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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 우리나라 섬유의역사

by 하루를그리다 2020. 9. 2.

우리나라 섬유의 역사

-우리나라 섬유의 역사는 약 5000년 전 신석기시대부터 칡이나 마 등의 식물섬유와 짐승의 털가죽인 동물 섬유를 써서 옷을 지어 입었던 것으로 추정되지만 남아있는 기록이나 실증적 유물은 없습니다. 

-청동기시대에서는 염료가 개발되지 않아 흰 천 그대로 옷을 지어 입었고, 백의민족이라 할 정도로 이를 즐겨 입었습니다.

-고구려, 백제, 신라의 삼국시대에서는 누에고치를 피륙으로 짜내는 과정인 길쌈이 성행하였고, 천연섬유의 자연색상을 그대로 사용한 기록이 남아있으며, 이것은 색의가 사용되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통일신라시대에는 중국 당나라 직물 문화의 영향을 받아 발전하였는데, 이때 삼베, 모시 등의 견직물 생산을 관장하는 부서와 염색을 관장하는 관서가 따로 있었습니다. 

-고려시대에서는 마직물이 성행하여 삼베는 일반 서민이, 모시는 상류계급이 사용하였고, 중국 명나라의 교역품으로 견직물과 물물 교환하는 용도로 쓰였습니다. 

-조선시대초에는 무명 제직 기술이 발달하여 무명베가 삼베, 모시와 함께 사용되었으나, 가내수공업으로 생산되어 품질이나 생산능력은 현저히 낮았습니다. 

 

-우리나라에서의 최초의 섬유 사업은 일제강점기 대인 1919년에 설립된 경성방직 주식회사입니다. 주로 섬유 제품을 생산하며 면사, 생사, 화섬사 등 각종 실들과, 면직물, 견직물, 화섬직물 등의 각종 직물을 제조하고 판매하였습니다. 그 이전에는 생사와 마를 원료로 한 영농형태로 존속해 왔으나, 기업적인 외형을 갖추고 의류 소재의 자급자족과 함께 국민의 의생활에 직접적으로 영향을 주는 방직산업의 초석이 되었습니다. 

-1945년 일제강점기 해방 후 우리나라는 상당한 규모의 방직 시설을 보유하게 되었으나, 재료 부품의 부족, 사회적 혼란 등의 어려운 환경 속에서 생산 활동을 이어오다 1950년 6.25 전쟁으로 인해 완전히 파괴되었습니다. 1953년 전쟁 휴전 후부터 미국, UN 등 원조자금에 의해 생산시설과 원재료를 공급받아 재건 단계에 들어가 1963년에 들어서면서 국내 최초의 화학섬유 생산시설이 도입되어 수출산업으로 급성장하게 되었습니다. 

 

-1970년대부터 수출액은 점점 증가하였으며 총수출에서 차치하는 비중도 30% 이상으로 유지되었습니다. 그러나 1970년대 말 선진국의 섬유수입규제 강화, 후진국의 섬유산업 집중 육성, 그리고 국내 경영악화로 인해 국제 경쟁력이 약화되었으나 본격적인 투자와 연구를 계속하였고, 1980년대에 들어서는 업종별, 품목별 생산 구조의 고도화가 촉진되었고, 지속적인 발전을 하여 선진국 수준으로 성숙해졌다고 볼 수 있습니다. 

-2000년대에 들어서는 세계적인 IT기반의 정보력과 우수한 디자인으로 인정받고 있으며, 친환경 섬유 및 신섬유 개발 및 기술력과 제품 수준을 고도화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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